이정웅의 대구 중구 나무 이야기
이정웅의 대구 중구 나무 이야기
  • 대경환경뉴스
  • 승인 2019.03.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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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사과나무 2세목 고사(枯死)

한국 최초의 사과나무 2세목 고사(枯死)

 

신천에스파스자문위원장  이정웅

 

대구 동산의료원 자료(동산의료원 100년사 등)에 의하면 우리니라에 사과나무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9(고종 36) 동산의료원 설립자 존슨과 계성학교 설립자 아담스 선교사라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구입처와 보급 방법은 서로 달라 전자는 미조리주에서 수입한 묘목을 신자들에게 그대로 나눠주었던 반면에 후자는 켄사스주에서 가져와 접()을 붙여 나눠주었다고 한다.

현재 두 선교사가 수입했던 사과나무는 대구의 어느 곳에도 없다. 그 후 존슨이 살던 사택(舍宅)에서 당초 들여왔던 사과나무의 종자에서 발아된 2세목을 발견하여 1999년 개원 100주년이 되는 해에 아담스의 3, 조지 아담스가 참석한 가운데 청라언덕의 의료선교박물관 옆에 옮겨 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과나무 100이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빗돌을 세웠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다. 초대 병원장인 존슨박사 Woodbridge O Jhonson 한국명 장인차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 재배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다. ”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대구의 명산으로 지금도 외지인들은 대구하면 사과를 연상할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져 대구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대구시민들의 경제력 향상에 기여한 사과나무의 유전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했다.

현장을 나가 의료원 관계자를 만나보니 수령이 70년 정도라고 했고, 노쇠해 줄기의 수피(樹皮)가 상당 부분 썩어 있었다. 계속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시가 직접 관리에 나서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동의했다.

그 때 실무자들은 반대했다. 100년 이상이 되어야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는 규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너무 쇠약해 지속적으로 관리해도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담당자로서는 응당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은 우리가 관리해야 한다고 강권하여 20001019일 보호수로 지정했다.

그 후 대구수목원 장원도 계장에게 부탁하여 접목을 통해 후계목으로 양성하라고 했다. 20073월에 착수하여 그동안 키워오던 3세목(사실은 2세목을 복제했음으로 2세 복제목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20125월 모수(母樹) 옆으로 옮겨 심었다. 이 때 김범일 시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18년 째 되는 올해 612일 같은 모임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의 이석순 부회장이 잎이 바짝 말라 수관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한 2세목의 사진을 카톡에 올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후배들이 원망스러웠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관리 잘 못이 아니라, 주어진 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어떻든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보려는 뜻에서 중구청 공원녹지계장을 하다가 지금은 달성군에 근무하는 박대수 계장에게 사진을 보내 후임 중구청 계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며칠 후 현장을 찾았다. 충해(蟲害)나 병해(病害)가 아니라 그동안 섭씨 30도가 넘는 고온이 지속되었고 심을 때부터 쇠약한 상태였으니 명이 다해 고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새로 심은 3세목 3루는 건강했다. 열매를 빽빽하게 달고 한여름 내려 쪼이는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영글고 있었다. 그 때 후계목을 양성해 놓지 않았다면 대구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던 사과나무의 흔적이 지구상에 사라질 뻔 했을 것을 감안하면 후계목 양성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새로 심은 3세목 사과나무
새로 심은 3세목 사과나무

 

옛 날 사람들은 논밭팔고,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내던 시절, 사과나무 한 그루로 대학생 한 사람을 공부시켰던 때도 있었다. 나무가 죽어 보호수대장에 고사(枯死)”라고 한 줄 그으면 행정적인 처리는 끝나겠지만 이 나무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사라저서 안 된다. 유전자원의 보전은 그래서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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