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웅의 대구 중구 나무 이야기
이정웅의 대구 중구 나무 이야기
  • 대경환경뉴스
  • 승인 2019.03.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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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 동학 교조(敎祖) 최제우와 종로초등학교의 회화나무

 

 

동학 교조(敎祖) 최제우와 종로초등학교의 회화나무

                                                              이정웅 신천에스파스자문위원장

1994년 충남 공주의 우금치(牛禁峙, 사적 제387)에서 <동학농민전쟁>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그 해 9, 전봉준(全琫準)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를 했다.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면 중부지역의 거점인 공주를 점령해 기선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공주를 중심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가려던 동학농민군의 무기가 낫과 쇠스랑, 죽창 등인 반면에 총으로 무장한 관군과 맞서 싸우다 결국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재기를 노리던 전봉준이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처형됨으로써 1년 동안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73년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졌으며, 전쟁 발발 100년이 지난 1994년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은 목적은 비록 달성하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발전의 큰 전기가 되었다.

전쟁의 발단은 탐관오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부군수 조병갑이 본분을 망각한 사리사욕에서 출발했지만 그 바탕에는 경주 출신의 동학 교조(敎祖)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영향이 컸다. 전쟁을 일으킨 전봉준은 동학의 접주(接主)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기념식은 주도한 농민과 접주 전봉준은 크게 부각되었지만 사상적으로 그를 교화한 수운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생가는 물론 각처를 유랑하다가 마침내 자리를 잡아 동학의 큰 뜻을 깨달은 경주 현곡의 용담정 등도 조명되지 못했다.

 수운은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근암 최옥(崔鋈)과 후처로 들어온 어머니 한씨(韓氏)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31(1854)까지 10년 이상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유··선 삼교, 서학, 무속, <정감록>과 같은 비기도참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접하는 동시에 서세동점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이중의 위기에서 고통당하는 민중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32(1855)에 우연히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비서(秘書)를 얻어 일종의 신비를 체험한 끝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근처에 있는 천성산 자연 동굴에 들어가 49일 기도 생활을 했다. 생계를 꾸려가기도 힘든 가족을 처가에 맡긴 채 구도 생활을 계속하던 수운은 36(1859)가 되던 해에 오랜 유랑 생활과 처가살이를 청산하고 고향 용담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정착한 지 1년 뒤인 1860년 음력 45일에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고 불리는 하늘 님과의 문답 끝에 1860(철종 11)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게 된다.

그러나 동학을 펴기 시작한 지 만 3년도 되지 않은 1863(철종 14) 12월에 체포되었고, 이듬해 310삿된 도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대구 경상감영의 관덕정(觀德亭)에서 처형당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1907년 순종 때 그의 죄가 풀렸다. 저서로 동경대전, 용담유사등이 있다.

 

종로초등학교 최제우나무
종로초등학교 최제우나무

 

유교와 불교, 신선사상은 물론 그리스도교의 장점을 융합한 동학은 19세기 중반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밖으로는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은 편안하게(輔國安民)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을 널리 구제(廣濟蒼生)하고, 안으로는 내가 곧 한울님이라는 시천주(侍天主)사상을 처음으로 내건 민족종교이다.

그럼에도 동학농민전쟁100년 기념식에서 그는 외면당했다. 출신지 경주는 물론 대구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의 무관심이 한 몫 한 것이다.

종로초등학교 교정에는 수령 400여년 된 큰 회화나무가 있다. 이곳은 감영 터로 그가 감사(監司)에게 불려 다니며 문초(問招)를 받는 고뇌에 찬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나무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을 구제하고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노력에 비하면 해 대접이 너무 소홀하다. 특히 대구는 그가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이승을 마감한 곳이라는 면에서 그를 기려야 할 책무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최제우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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